Of all the ideas that became the United States, there’s a line here that’s at the heart of all the others.
"But when a long train of abuses and usurpations, pursuing invariably the same object, evinces a design to reduce them under absolute despotism, it is their right, it is their duty to throw off such government and provide new guards for their future security."
미국이 된 아이디어? 생각이 나라가 된다? 이 영화는 이러한 관점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역사가 짧아도, 스스로 그렇게 뿌리를 세우고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는 비행기를 처음 만들어 띄운 라이트형제의 기념관이 있다. 그곳에서 처음 비행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곳에 구경을 가 본 적이 있다. 가 봤더니 그냥 넓은 허허벌판인데, 그 허허벌판에다가 비행기 여기서 띄워서 이만큼 날았다 표시하는 비석을 여러 개 세워뒀더라. 얘네가 아무래도 역사가 짧으니까, 그게 뭔가 콤플렉스가 있고, 이렇게라도 전통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허허벌판을 문화재랍시고 자랑하는 모습이 안습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노력들이 과연 600여 년이 지났을 때, 어떤 결실을 맺게 될까 생각을 해 보니, 그게 또 무서운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내가 보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기본이고 국력이다.
다들 잊고 살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야말로 생각이 나라가 된 곳이다. 헌법을 근간으로 하는 근대국가들이 출범하기 훨씬 전인 14세기까지 이렇게 철저하게 이념에 의해서 모든 것이 구현된 나라는 지구 상에 없었다. 이상국가를 말하던 플라톤이 설파한 철학자들이 통치하는 나라가, 이 땅에 구현되어 실험된 것이다. 조선은 고려말 타락한 불교와 각종 미신들을 몰아내며, 유교의 합리주의 정신 위에 세워진 품격이 있는 나라였다.
불에 탄 숭례문의 이름은 바로 이 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이 지었다. 어젯밤에 불에 타 무너져내렸다는 숭례문의 그 이름, 그 현판 하나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지금부터 조사결과를 발표하니, 모두 눈물 흘릴 준비를 해라.
연전에 정도(定都) 600년을 맞이하여 이를 기념하는 사업을 벌인 바 있지만, 서울이 조선의 도읍지로 정해진 것은 태조 3년인 1394년이었다. 이때부터 경복궁을 착공하고, 동서남북에 4대문을 내고, 4대문을 연결하는 내성(內城)을 축조하기 시작하여 태조 7년에 1차 완성을 본다. 이렇게 하여 도성의 기본적인 모양새가 잡힌다.
한데 이때 대소의 문(門)들을 배치하고 이름한 것이 예사롭지가 않다. 우선 4대문을 보면, 동쪽에 내니까 동대문, 서쪽에 내니까 서대문‥‥ 이렇게 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무심코 보아 넘긴 그 이름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동대문이라고 속칭하는 문의 이름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속칭 서대문은 본래 이 흥인지문에서 광화문을 통과하는 일직선상에 있었으나, 그 문밖의 경사가 가팔라 통행에 지장이 많다 하여 세종 연간에 약간 남쪽으로 옮겨서 문을 새로 내었다. 그래서 오늘날 '새문안'이니 '신문로'니 하는 지명의 흔적을 남기고, 그나마 일제에 의해 헐리어 없어졌는데, 그 이름은 돈의문(敦義門)이었다. 현판까지 잘 보존되어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속칭 남대문의 본이름은 숭례문(崇禮門)이다. 북문은 현재 삼청동 터널 위쪽에 복원해 놓은 숙정문(肅靖門)이다. 그런데 이 숙정문은 본래 방위에 맞추어 문을 내기는 했지만 문의 구실을 하지는 않았다. 워낙 그쪽을 지나서는 더 나아갈 길이 없었던 데다가, 숙종조 이후에는 풍수지리설에 북문을 이쪽으로 열어 놓게 되면 음기(淫氣)가 침범하여 서울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해진다 하여, 문을 만들어 놓기만 했을 뿐 그곳을 통해 드나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대신, 숙종조에 들어 서북쪽으로 약간 비켜 오늘날 상명대학교 앞쪽에 홍지문(弘智門)을 내고 이후로 그쪽을 통해 다니게 되는데 이 홍지문이 사실상의 북문이었다.
정리해 보면, 동쪽으로 낸 문만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글 수를 넉 자로 했지만, 동서남북 사방의 대문이 각각 흥인(興仁), 돈의(敦義). 숭례(崇禮), 홍지(弘智)라는 숭고한 의미가 담긴 말들로써 그 이름을 삼고 있다. 이것을 다시 들여다보면 유교사상의 핵심 개념인 인·의·예·지와 정확히 대응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인간의 참다운 본성(本性), 그 최고의 가치들을 사방의 각 대문이 하나씩 현양하고 있는 것이다.
우연히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이름들을 지은 정도전의 작명 감각이 뛰어났구나 하고 감탄하고 말 일도 아니다. 바로 조선왕조의 건국이념과 통치철학이 이렇게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신생국가는 창칼로서가 아니라 인의예지로써 백성을 다스려 나가겠다고 하는 통치자의 확고한 의지가 이렇게 천명된 것이다. 이것 하나만을 두고 보더라도 조선왕조가 얼마나 뚜렷한 명분 위에 발을 딛고 출발한 나라인지를 알 수 있다. (조선의 건국이념)
이 얼마나 멋진가? '인의예지'라고 하는 새로운 국가의 통치이념을 담아 세운 대문이고 지은 이름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뿐만이 아니다.
한학에서는 모든 글자를 5행으로 분류하여 목, 화, 토, 금, 수 가운데 하나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숭(崇)과 례(禮) 두 글씨는 모두 모두 화에 해당한다. 따라서 두 글씨를 세로로 겹쳐 쓰면 화가 두 개가 되어 불탈 염이 된다. 타오르는 불길이 관악산 화기에 맞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있는 경복궁 이야기)
관악산의 화기를 막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 또 알아봐야 할 것이다.
관악산은 생긴 형상이 마치 관(冠)처럼 뾰족한 아름다운 바위산이라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산이다. 그러나 날카로운 자태로 인해, 예로부터 쳐다보기도 꺼려지는 산으로 간주되어 왔다. 풍수로 보아, 서울 남쪽에 있는 불산[王都南方之火山(왕도남방지화산)]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삼막사가 자리 잡은 바로 옆의 삼성산 또한 같은 취급을 당하였다.
조선 초기 도읍 터를 정하는 과정에 있었던 무학(無學)대사와 정도전(鄭道傳)의 의견 대립은 대개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관악산을 정남향으로 바라보고 궁궐을 세우면, 관악산의 살기가 궁성(宮城)을 위압하여 국가가 평안치 않다는 무학대사의 주장이 먼저 있었다. 화기는 화재와 병란을 암시한다. 그러자 남쪽에 둘리어진 큰 강물인 한강이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막아내니, 관악산을 바라보며 정남향으로 궁궐을 세워도 무방하다는 정도전의 주장이 대두하였다. 결국, 궁궐은 정도전의 의견에 따라 관악산을 바라보며 정남향을 하고 세워졌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한양에 정도(定都)한 이후로 도성에는 왕자의 난과 화재가 연이었다. 그래서 풍수설에 따라 불의 산인 관악산과 삼성산의 불기를 끊는다는 비보책(裨補策)으로, 서울 남대문 바로 앞에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인공적으로 조성하였다. 연못뿐만이 아니다. 남대문의 현판에 숭례문(崇禮門)이란 글씨도 결국 세로로 쓰여지게 되었다.
현액(懸額)의 글씨는 가로로 쓰는 것이 관례이다. 숭례문이란 현액을 세로로 쓴 것은 관악산과 삼성산의 화기가 도성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다는 의미에서였다. 숭(崇)은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그리고 예(禮)란 글자를 오행(五行)으로 따져보면, 이는 화(火)에 속한다. 화를 오방(五方)으로 따지면 남(南)에 해당한다. 따라서 남쪽에 불을 지른다는 뜻이 되니, 이는 맞불 작전인 셈이다.
그리고 모양으로 보아, 숭례(崇禮)라는 글자를 세로로 써야 불이 더 잘 타오를 수 있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는 숭례문의 화기로 불산에서 옮겨오는 불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세로로 쓴 숭례문의 현판이 정도전의 솜씨라는 점이다. 결국은 정도전이 무학대사에게 지고만 꼴이 되었다. (관악산과 풍수지리)
맨 마지막에 정도전의 글씨라는 것은 다소 사실과 다른 것 같다.
이 숭례문의 글씨는 태종 때의 명필인 신색의 글씨라고도 하고, 또 중종 때 공조판서를 지낸 유진동의 글씨라고도 하나, 더 많은 사람들은 양녕대군의 글씨라고 말한다. 한때 이 숭례문의 현판이 행방불명된 적이 있었다. 바로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청파역 아래 배다리 밑에서 밤이면 이상한 서기가 비치더란다. 동네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배다리 아래로 내려가 보니 흙탕물 속에서 숭례문의 현판이 서기를 내더라는 것이다. 명필은 땅속에 묻혀도 빛이 난다고 했는데, 숭례문의 현판이 바로 그 예가 아니었는가. [한양 이야기 (조선왕조 500년의 도읍 한양 읽기)]
정리해 보면, 숭례문이라는 이름과 그 현판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의미들이 담겨 있다.
1. 조선은 인의예지의 이념 위에 세워진 국가이고, 숭례문은 그 중 '예'를 상징한다.
2.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하여, 숭(崇)과 례(禮)라는 모두 한학에서 불에 해당하는 글자들을 남쪽에 두어, 관악산의 화기에 맞불을 놓아, 국가적으로 좋지 않은 일을 막는다.
3. 현판이 세로로 쓰여진 까닭은, 숭과 례라고 하는 불을 상징하는 글자들이 더욱 더 활활 잘 타오르도록 하여, 2번의 목적을 더 잘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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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깊은 뜻이… |
어디서 '오뤤지 어륀지'하는 오랑캐 같은 잡것들이 설치지를 않나. 나라가 정말 뒤숭숭하다. 하 증말 지못미가 아닐수없다. 요즘 왜 이렇게 '지못미' 외칠 일이 많은지.
숭례문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