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을 품고 있는 여주를 두번째로 다녀왔습니다.
여주에서는 '여강'이라고 부른답니다.
여강이 남한강인지도 모르고 그저 '여강'이라고만 알고 계시는 분도 있다네요.

여주에서는 '여강'이라고 부른답니다.
여강이 남한강인지도 모르고 그저 '여강'이라고만 알고 계시는 분도 있다네요.
<오늘의 출발지, 신륵사 강월헌에서 바라본 풍경>
<바위늪구비 습지 주변 풍경입니다.
멀리 청미천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가 보이네요>
강가를 천천히 걸으면서 설명도 듣고, 날아가는 물새떼도 보고, 갈대숲에도 누워보고, 강모래가에선 '버들피리'며 '엄마야 누나야', '퐁당퐁당'같은 노래도 같이 불러보고, 푸득푸득 날아오르는 물새소리도 듣고, 갈잎에 이는 바람도 느껴보고, 사람의 손길이라곤 보이지 않는 풍경을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걸으며 '와, 좋다..'라는 혼잣말만 되뇌이고... 하면서 제가 든 생각은,
"아, 내가 참 강변을 잊어버리고 살았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 너머 아홉살이 고개는 예전 문경새재 넘어 충주에서 넘어온 샌님들이 과거 보러 가던 고개였고, 신경림의 목계장터에 나올 법한 방물장수들이 오일장에 대려고 지고 이고 넘었던 고개였습니다. 한번 넘어지면 아홉번은 굴러주어야 제 수명을 누릴 수 있다는 전설도 서려 있구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은모래빛..'
강모래를 맨발로 밟는 서걱서걱한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배후습지, 자연제방이 살아있고, 10여전 전까지만 해도 여강이 불이 불을 때 쌓인 강모래 땅에 땅콩농사를 지었답니다. 지금은 논으로 다 바뀌어 버렸지만, 누구의 말처럼 사람과 땅과 강은 예전엔 다 한통속이었던 모양입니다. 동심으로 돌아가 강모래가 깔린 길에서 맨발로 달리기 시합을 했습니다. 맨발에 닿는 고운 모래의 서걱서걱한 느낌이 참 기분좋더라구요.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강변을 걸으니 어렸을 때 미꾸라지 잡는다고 물가 도랑을 첨벙거리며 다니던 기억, 좀 커서 개헤엄치며 물고기 잡으러 다니던 옛 추억이 오랜만에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강과 같은 높이에서 강가를 바라본 것이 참 오랫만이더군요. 항상 강둑에서 강을 내려다 볼때보다 훨씬 강과 친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남한강 지류인 조방천의 제방공사 장면입니다.
대운하가 건설되면 이런 제방을 540km에 걸쳐 쌓아야만 합니다>
그런 곳이 이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이건 뭐, 물류혁명이고 나발이고, 다리가 어떻고 하상계수가 어떻고 하는 것을 다 떠나서, 이 아름다운 곳을 다 없애고 시멘트 제방을 6미터니 4미터니 쌓아올린다는 얘기를 생각하니까 정말 아찔했습니다. 정말 미친 짓이지요. 저도 이렇게 아름다운 강변을 이제야 알았는데 이제 영영 강변을 걸을 수 없게 만든다는 얘기니까요.
서울로 돌아와서 본 한강은 더 이상 강으로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나름 천만 서울시민의 휴식터인 한강이지만 진짜 '강'을, '강변'을, '강가'를 보고와서 사랑에 빠져버린 저에게는 물새 한마리 찾기 힘든 한강이 정말 삭막해 보여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한강입니다
위의 '진짜' 강 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사진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힙니다>
이번에 여주에 간 것은 앞으로 2mb운하의 중요지점인 여주 남한강변에서 '사람, 강을 만나다(가칭)'라는 운하 반대 프로그램을 먼저 체험하기 위해서 간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원찰인 신륵사에서 출발하여 남한강 강변을 따라 죽 걸어 올라가 바위늪구비 습지까지 걷고, 흥원창의 낙조까지 보고 오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멀리 청미천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가 보이네요>
강가를 천천히 걸으면서 설명도 듣고, 날아가는 물새떼도 보고, 갈대숲에도 누워보고, 강모래가에선 '버들피리'며 '엄마야 누나야', '퐁당퐁당'같은 노래도 같이 불러보고, 푸득푸득 날아오르는 물새소리도 듣고, 갈잎에 이는 바람도 느껴보고, 사람의 손길이라곤 보이지 않는 풍경을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걸으며 '와, 좋다..'라는 혼잣말만 되뇌이고... 하면서 제가 든 생각은,
"아, 내가 참 강변을 잊어버리고 살았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우리나라 1/3의 인구가 생각하는 강의 이미지는 한강입니다. 그러나 도심을 유유히 흐르는 한강의 모습은 이미 자연속의 강변이라기 보다는 고수부지이자, 강둑에 불과합니다. 그저 강둑을 사람이 쓸 수 있도록 꾸민 인공적인 공원 내지는 주차장에 불과합니다. 거기에는 물수제비를 뜰 납작한 자갈도, 강모래도, 강너머 보이는 언덕배기와 아늑한 마을 풍경도 없는 "강둑"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운하를 상상하니까 그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인 거겠죠.
그러나 여주에서 우리가 만난 풍경은 '강변'이고 '강가'였습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에 나오는 은모래와 갈잎의 노래가 살아있고, 우리 발자국 소리에 흰뺨검은 오리들이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르는 것을 보며 갯버들 꺾어서 버들피리 부를 수 있는 '강변'이었습니다.
<강 너머 보이는 아홉구비 고개가 아홉살이입니다.
강변의 풍경이 너무나도 여유롭지 않나요?>
강변의 풍경이 너무나도 여유롭지 않나요?>
강 너머 아홉살이 고개는 예전 문경새재 넘어 충주에서 넘어온 샌님들이 과거 보러 가던 고개였고, 신경림의 목계장터에 나올 법한 방물장수들이 오일장에 대려고 지고 이고 넘었던 고개였습니다. 한번 넘어지면 아홉번은 굴러주어야 제 수명을 누릴 수 있다는 전설도 서려 있구요.
신륵사 근처의 조포나루, 여강 자락의 이포나루는 서울의 광나루, 마포나루와 함께 한강의 4대 나루였습니다. 나루터 하면 호랭이 담배물던 시절의 얘기같지만, 조포나루는 여주대교가 건설되기 직전까지, 그리고 이포나루는 1992년까지 뱃사공의 뱃삯을 받고 나룻배를 운행했다니 우리 삶과 그렇게 멀지도 않은 것이 나루였다는 걸 저도 이번에서야 알았습니다.
강모래를 맨발로 밟는 서걱서걱한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배후습지, 자연제방이 살아있고, 10여전 전까지만 해도 여강이 불이 불을 때 쌓인 강모래 땅에 땅콩농사를 지었답니다. 지금은 논으로 다 바뀌어 버렸지만, 누구의 말처럼 사람과 땅과 강은 예전엔 다 한통속이었던 모양입니다. 동심으로 돌아가 강모래가 깔린 길에서 맨발로 달리기 시합을 했습니다. 맨발에 닿는 고운 모래의 서걱서걱한 느낌이 참 기분좋더라구요.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강변을 걸으니 어렸을 때 미꾸라지 잡는다고 물가 도랑을 첨벙거리며 다니던 기억, 좀 커서 개헤엄치며 물고기 잡으러 다니던 옛 추억이 오랜만에 떠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강과 같은 높이에서 강가를 바라본 것이 참 오랫만이더군요. 항상 강둑에서 강을 내려다 볼때보다 훨씬 강과 친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대운하가 건설되면 이런 제방을 540km에 걸쳐 쌓아야만 합니다>
그런 곳이 이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이건 뭐, 물류혁명이고 나발이고, 다리가 어떻고 하상계수가 어떻고 하는 것을 다 떠나서, 이 아름다운 곳을 다 없애고 시멘트 제방을 6미터니 4미터니 쌓아올린다는 얘기를 생각하니까 정말 아찔했습니다. 정말 미친 짓이지요. 저도 이렇게 아름다운 강변을 이제야 알았는데 이제 영영 강변을 걸을 수 없게 만든다는 얘기니까요.
서울로 돌아와서 본 한강은 더 이상 강으로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나름 천만 서울시민의 휴식터인 한강이지만 진짜 '강'을, '강변'을, '강가'를 보고와서 사랑에 빠져버린 저에게는 물새 한마리 찾기 힘든 한강이 정말 삭막해 보여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위의 '진짜' 강 사진과 비교해 보세요 사진만 봐도 숨이 턱턱 막힙니다>
운하를 왜 막아야 하느냐고요? 물류혁명, 국운융성을 왜 막으려 하느냐고요? 여주에 가서 강변을 한번만 걸어보세요. 그 어떤 논리보다 더 강한 자연의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으실 겝니다. 가실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도 잊지 마세요. 미친 mb운하가 건설되면 영영 볼 수 없는 풍경일지도 모르거든요.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